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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자료_부고] 한평생 자주·민주·통일의 한길에 헌신해오신 조영건 교수 별세

    • 작성자대변인실
    • 등록일2024.07.10
    • 조회수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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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자료_부고] 한평생 자주·민주·통일의 한길에 헌신해오신 조영건 교수 별세

    - 4·19혁명의 주역에서 진보적 학술활동으로!

    - 열정적 진보정당 운동에 이어 구속노동자후원회까지! 

     


     

     

     

    4·19혁명의 주역으로, 당시 총상을 입은 중학생을 시위대와 함께 부축하며 ‘환자 위급’, ‘환자 후송’이라고 외치는 사진의 주인공 조영건 교수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1940년 경상남도 영산현, 현재의 창녕군 도천에서 태어났다. 1945년 해방 이후 첫 한글 교육을 받은 해방세대, 한글세대, 민족세대였다.

    부산의 경남고를 졸업하고 195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고인은 1964년 한국노총에서 ‘노동운동사’ 편찬위원을 모집하는 광고에 응시해, ‘노동운동사’ 편찬위원회 일과 이후 한국노총이 신설한 기획실 일도 맡게 된다. 이때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협찬한 아시아문제연구소 학술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도 했다. 

     

    1971년 건국대 강사를 시작으로, 1975년 청주대학에서 조교수로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학계에서 노동문제에 실천적 의지를 가진 전공연구자 교수들과 ‘노동경제학회’를 창설하였고, 이후 노동시장이론 노사협조주의를 반대하는 학자들의 모임 ‘임노동학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1979년에 경제사학 교수 초빙으로, 경남대학교로 교단을 옮겨 학자 생활을 한다. 

    1988년 6월 18일 사월혁명연구소가 결성되고 연구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6년 5대 연구소장을 맡는다.

     

    노동운동의 메카 영국의 런던정경대학(LSE)에 연구교수로, 노동과 운동의 과학을 연구했다. 그리고 런던대학교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객원교수의 기회를 얻어 중국, 대만, 일본, 남과 북에 관한 도서관 문헌을 섭렵하며 학문적 매진의 기회를 가진다.

    고인은 1992년 경남대학교의 자매대학인 하바로프스크 사범대학 동방학부에 한국학 강의교수로 초청되어 한 학기를 강의했다. 1994년에는 블라디보스톡 국립대학에서 고려합섬 투자로 개설한 한국학대학 초빙 교수로도 근무했다. 2000년에는 상해 푸단대학 연구교수로 초빙받았고, 같은 해 장춘 길림대학 조선문제연구소 초빙교수로 동북중국의 문제를 연구 토론하기도 했다.

    고인은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조직된 통일연대의 학술연구특별위원장을 맡으면서, 상임대표자회의에 학자로서 결합했다. 또한, 2003년에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되자 남측위원회 학술본부 상임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 그리고 6‧15남측위원회경남본부 상임대표의장도 맡게 된다.

     

    1997년부터 진보정당 창당 작업이 고양되자, 고인은 자주‧민주‧통일 4월혁명정신을 안고 창당준비위원으로 결합하여, 당명제정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진보정치> 당기관지위원장과 재단법인으로 새로 정비한 새세상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또한 고인은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장으로 생을 다할 때까지 노동자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다음은 2012년 <사월혁명회보> 회원탐방에서 칠순을 넘긴 조영건 교수의 소회(所懷)다.

     

    “후대에게 모든 것을 기대해도 좋을 때가 되었다. 

    후배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진보정치가 요구하는 고문 그리고 통일운동이 청하는 고문 외에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투쟁한 구국의 영웅 이순신과 같은 반열로 중국에서 추앙받던 명장 악비가 남긴 환아하산(還我河山) 이라는 글귀가 점점 나에게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식민과 분단의 고난을 넘어 역사는 한 세기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 시대로 접어든다.

    이제 돌이켜보면 시대를 굴절없이 산 4‧19 우리 세대 벗들과 같이 형극도 보람도 같이 했지만 해방 국면에서 깨어 앞선 동료들은 다 죽고 다 폐인이 되었는데 한평생을 살아가려면 교수자리를 걸쳐 대학에라도 몸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은사 교수의 권고로 학위도 하고 교수도 하고 살았으니 나는 고생한 동세대 동지들과 벗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러나 내가 부모에게의 효도에 앞서 처자식에의 의무에 앞서 내 일신의 타산에 앞서 내 나름대로의 가진 모든 것 의지도 정열도 지식도 돈도 시간도 모두를 민족과 민중에게 바치고자 나를 재촉했다.

    나는 옆도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와 일흔에 이른 것이다.”

    (출처 : <사월혁명회보> 제104호, 2012년 4월) 

     

    장례는 

    <자주 민주 통일의 한 생 ‘故 조영건 교수 노동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가 주관합니다.

     

    - 빈소 :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

    - 입관 : 7월 11일 오후 1시 30분

    - 발인 : 7월 12일 오전 6시 30분

    - 화장 : 7월 12일 오전 9시 30분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

    - 장지 : 마석 모란공원 

    - 추모의 밤 : 7월 11일 오후 7시

     

    <약력>

    - 새세상연구소(민주노동당) 이사장

    - 진보정책연구원(민주노동당) 이사장

    - 진보정책연구원(통합진보당) 이사장

    - 6.15실천경남본부 상임대표의장 

    - 런던대학교 정경대(LSE) 연구교수

    - 하바로프스크 사대 동방학부(러) 강의교수

    - 블라디보스톡 극동대 한국학대 (러) 강의교수

    - 상해 복단대(중) 초빙교수

    - 사월혁명연구소 소장

    -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상임대표

    - 6.10항쟁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6.15실천남측학술본부 상임위원장

    - 몽양 여운형 기념사업회 고문 

    - 죽산 조봉암 명예회복 공동위원장

    - 경제사학회 부회장

    -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 

    -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 민주노동당 고문

    - 통합진보당 고문 

    - 한국진보연대 고문

    -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 615실천남측학술본부 명예위원장

     

    현)

    - 진보당 고문

    - 사월혁명회 회원

    - 615학술마당 고문

    -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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