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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홍성규 대변인 브리핑] '아리셀 참사' 재발방지책 1호는 국민의힘 '중처법 유예안' 철회부터다! / 남성들만 모여 머리를 맞대면 저출생대책이 나오나!

    • 작성자대변인실
    • 등록일2024.06.27
    • 조회수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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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시 : 2024년 6월 26일(수) 오전 10시 50분 

    □ 장소 :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 '아리셀 참사' 재발방지책 1호는 국민의힘 '중처법 유예안' 철회부터다!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로 온 국민이 큰 충격과 함께 비통함에 빠져 있다. 

    사회 각계에서 '재발방지책'에 대한 요구가 강력하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도 연일 공식 논평을 통해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점식 정책위의장은 어제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정말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공장의 안전관리시스템에 빈틈이 없었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이 모든 논평과 발언이 진심이라면, 국민의힘은 즉각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안'부터 철회함이 마땅하다. 

    어제 경찰과 함께 현장 합동감식을 진행한 노동부는 중처법 위반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1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시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수사다. 

    그러나 그간 확대시행을 어떻게든 막으려했던 국민의힘은 급기야 지난 17일 소속의원 108명 전원이 서명하며 '2년 유예'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22대 국회 민생법안 패키지 1호'라고 대대적으로 자랑하기까지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노동자들의 죽음을 수수방관하자는 것에 어떻게 '민생법안'이란 명칭을 갖다붙일 수 있나? 

    국민의힘의 '중처법 유예안'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하고 참담한 법안인지는 이번 아리셀 참사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추모'니 '참담하고 안타깝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말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요인들의 현장 방문보다 더 시급하고 구체적인 재발방지책은 바로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중처법 유예안' 철회다.

     

     

    ■ 남성들만 모여 머리를 맞대면 저출생대책이 나오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라고까지 언급했던 '저출생 대책' 관련 논의 기구가 전원 남성으로만 꾸려졌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일·생활 균형위원회'다. 대통령은 지난 19일 직접 발표한 '저출생 대책'에서도 '일·생활 균형'을 주요 과제로 꼽은 바 있다. 

     

    위원장부터 노사정위원 7명, 공익위원 5명 등 총 13명이 모두 남성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남성들만 모여 머리를 맞대면 '저출생 대책'이 나오나? 

    당신들의 국가는, 당신들의 가정은 온통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건가? 

     

    경사노위 대변인의 변명이 가관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추천받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답변했다. 그간 끈질기게 지적했던, 강고한 '유리천장'을 지탱해온 궤변에 불과하다. 전문가 중에 여성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인데, 애시당초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고 솔직하게 실토하라. 

    이어 "위원회 논의를 지원하는 담당전문위원들은 여성이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결정은 남성이 할 테니 실무 등 지원은 여성이 맡으라는 건데, 그야말로 저열하고 참담한 인식수준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대통령이 아무리 '국가비상사태'를 외친들 정부여당의 인식수준이 이럴진대, '저출생 대책'이 과연 가능이나 하겠나! 

    첫 단추부터 다시 꿰어야 한다. 

     

     

    2024년 6월 26일

    진보당 대변인 홍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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